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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재미있어 신나게 놀다 보면 된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KIPFA-2017_03]

재미있어 신나게 놀다 보면 된다


원더랜드ㅣ스티븐 존슨 지음ㅣ홍지수 옮김ㅣ
프런티어ㅣ444쪽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즐기는 사람이 미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언젠가 ‘놀라운 세상’ 정도의 공중파 TV프로그램에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을 보았다. 한 청년은 서울의 시내버스 박사이다. 노선, 번호, 배차시간, 차종 등등 시내버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하고, 암기하는 것으로 ‘미친 듯’ 바빴다. 또 다른 청년은 전국의 기차에 대해 그랬고, 다른 한 청년은 지하철에 대해서 그랬다. ‘먹고사니즘’을 최고로 치는 실사구시의 저자에게 그 청년들의 행태는 도무지 이해불가였다. 그들의 뒤를 쫓던 카메라맨이나 취재 작가들이 “도대체 왜 이런 (한심한) 일에 정력을 쏟는 거죠?”라는 질문에 그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재미있잖아요!”

그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필시 그 중에 한 두 명은 그런 엉뚱한 재미 덕분에 얻은 지식(?)으로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공학 분야에서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정점에 미치지 못한다)은 유사이래의 진리이므로.

그러나 ‘음주, 도박, 마약’ 등 육체와 정신을 망가뜨리는 ‘쾌락’에 미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물론 그것들에도 미치기만 하면 남달리 번뜩이는 영감을 얻지 말란 법 없겠으나 그 영감을 얻고 실행하기 이전에 육신이 먼저 이 사회와 격리되기 십상이므로.

신간 『원더랜드』는 순전히 어떤 재미와 놀이가 주는 ‘쾌락’에 미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켜왔다는 뜻밖의 역사적 분석을 제시한다. 부제도 ‘미래를 보고 싶다면 가장 신바람 나게 노는 사람을 주목하라’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쾌락에는 음주, 도박, 마약은 물론 인류가 가장 당연시해야 할 쾌락인 ‘성행위’가 빠져있다. 저자는 ‘인류에게 성행위는 필수품이지 사치품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룰 쾌락의 역사는 성보다 실용성이 떨어지는 어떤 쾌락에 관한 이야기’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저자가 분석한, 비실용적 쾌락은 ‘패션&쇼핑, 음악, 맛, 환영(유령), 게임(도박이 아님), 놀이터’에 있었다.

흔히들 웃자는 말로 ‘여자가 화장을 할 때,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 기다리는 남자는 환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아름다움은 그만큼 인류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5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처음 옷을 만들고, 얼굴에 치장을 했던 목적은 분명 실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페니키아 남부 티르(Tyre) 지방에서 바다달팽이의 분비물을 이용한 자주색 염료(티리언 퍼플 tyrian purple)가 생산되면서 옷은 패션(유행)과 쇼핑(백화점)의 혁신을 가져왔다.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 역시 ‘목화’였다. 염색과 봉제의 발전은 아름다움(재미 & 쾌락)의 ‘취향’을 발견했고, 유행을 유행시켰다.

인류의 보편적 쾌락으로 뺄 수 없는 것이 (적당한) 음주가무이다. 술, 노래, 춤인데 술과 춤은 노래(음악)가 있어야 제대로 성립된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음악을 오직 ‘재미’로 즐겼던 것이 악기, 작품, 공연 등 오늘날의 거대한 예술 시장을 만들어냈다. 고래로 동서양 간의 해상, 육상 무역의 중심엔 향신료의 대표격인 동양권의 ‘후추’가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후추는 너무 비싸 상류층 귀족이나 그 맛을 재미 볼 수 있었다. 후추는 로마의 멸망을 앞당겼고, 영국과 청나라 사이 아편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맛’이야 말로 인류의 역사를 뒤바꾸는 거대한 쾌락이었다.

환영(幻影 Illusion)은 ‘유령’을 파는 것에서 시작해 마술이나 영화를 거쳐 SF, 판타지 소설로 이어져왔다. 18세기 초 슈뢰퍼라는 독일의 젊은이는 유달리 ‘공포의 재미’를 즐겼다. 그는 아예 커피하우스의 당구실에 ‘귀신 체험 극장’을 차렸다. 그가 즐기다가 우연히 생각해 낸 오락의 형태가 엄청난 규모의 공포를 파는 시장으로 발전했다. 체스, 바둑, 장기, 마작 등으로 시작됐던 인간의 승부근성과 쾌감이 담긴 ‘게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오래 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오로지 재미있게 놀기 위한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00랜드가 처음 생겼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저게 과연 될까’ 의심했지만 지금은 그런 ‘원더랜드’가 전국에 널려있다. 그러니 좀 바쁘더라도 멀리 내다보는 자세로 재미에 푹 빠져 신바람 나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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